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J. R. R. 톨킨 (문단 편집) === 말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XR-4vMEiQ_U)]}}}||<:>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a5TUYB1nlw)]}}}|| ||<-2><:> {{{#FFFFFF ''' 말년의 모습. 톨킨의 목소리를 들어 볼 수 있다. ''' }}} || 1959년 은퇴로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1973년까지 톨킨은 저작 반지의 제왕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는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인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톨킨은 조기 은퇴를 후회할 정도가 되었다. 팬들의 관심이 과해지자 톨킨은 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게 된다. 결국 톨킨 부부는 영국해협의 풀만(灣)에 면해 있는 한가한 본머스로 이주하였다. 1972년 1월 톨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을 지명받고 1972년 3월 28일 버킹엄 궁전에서 훈장을 받게 된다. 1971년 11월 29일 톨킨의 아내 이디스가 사망하자 톨킨은 묘비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21개월 후에 1973년 9월 2일 톨킨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톨킨도 같은 묘지에 묻히게 되고 묘비에는 베렌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부부의 묘지는 옥스퍼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옥스팜 가게로 바뀐 세인트 자일스 거리 톨킨의 옛 집에서 옥스퍼드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밴버리 로드를 따라 13㎞쯤 북쪽으로 차를 달리면 울버코트 공동묘지가 나온다. 톨킨과 부인이 함께 묻힌 무덤엔 팬들이 다양한 언어로 써서 놓고 간 편지들이 돌 아래 놓여 있었다. 그 위로 작달막한 장미나무 한 그루가 자랐고, 그 가지가 바람에 흔들릴 때 마다 톨킨 팬들이 가는 실로 묶어 둔 절대반지 여러 개가 함께 흔들렸다. 톨킨의 팬들이 쓴 편지 중 하나는 캐나다에서 온 ‘저스틴’이 써둔 것이었다. “톨킨, 모든 게 다 고마워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